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산수화의 고향 계림을 찾았다. 계림 공항에 도착하여 깨끗하게 단장된 국제공항으로 변모한 모습에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일면을 확인한다. 공항의 앞 광장에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항상 거대한 스케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중국인의 특기를 다시 한번 느낀다.

"저는 여러분의 계림 여행안내를 맡은 가이드 미스터 박이라고 합니다. 많이 피곤하시죠, 잠시 후에 제가 호텔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미스터 박, 자네 아버님 직업이 의사가 아니신가?"

"아니, 초면에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지"

"그래도 어떻게 저의 아버님이 의사라는 것을 아실 수가 있을까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계림의 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가이드 미스터 박과 나는 차 내에서 대화를 나눈다. 엉뚱한 대화에 동행한 화가들도 귀를 기울인다. 나는 8년 전(1992년) 계림을 스케치하기 위하여 이곳에 온 일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 가이드인 미스터 박이 나를 안내하여 주었다. 나의 스케치 여행을 도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곳을 안내해 주었던 착한 젊은 청년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그와 나눈 대화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의 아버님 직업이 의사라는 것, 가이드가 의사보다 인기 있는 직업이라는 것,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것, 계림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 밭에서 농사짓는 이곳 농부들의 꿈은 흑백 T.V를 갖는 것이라는 등의 대화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있고 그는 앞에 서있다. 나와 가이드는 큰 소리로 대화를 계속한다. 대화의 내용을 듣고 있던 일행들이 우리들의 대화 내용이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사실에 흥미를 갖는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재회의 기쁨을 확인하는 순간 일행들은 환성과 박수로 갈채를 보낸다. 이렇게 먼 타국에서 예상하지 못한 재회의 기쁨을 맞으면서 만남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느낀다. 아름다운 재회로 우리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감동 같은 것을 느낀다. 하루를 달려온 여행의 피로를 순간에 씻어 버리게 하는 기쁨의 만남이다. 이제 그가 계림을 안내하는 완숙한 가이드로 변신되어 있다는 사실도 반가운 일이다. 중국 회화의 원류와 그 발상지를 찾아 스케치 여행에 나선 출발이 기분 좋은 만남으로 즐겁기만 하다. 

소나기가 내리고 지나간 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강의 아침은 아름답다. 이강의 아름다움은 동양회화의 아름다운 ‘산수화’ 그 자체이다. 좋은 경치에서 좋은 그림이 나온다는 사실을 나는 계림에서 다시 한번 실감한다.

이강호텔 옥상에서 새벽 스케치를 시작한다. 계림시를 내려다보며 그려지는 그림은 연속된다. 한자리에서 360도 한 바퀴를 돌며 한 권의 스케치북을 완성하는 대기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재촉하듯 스케치를 서두는 일은 화가에게 흥분되는 일이다. 계림은 2,000여 년 전 진나라의 황제 진시황이 이곳에 시한현의 행정구를 설치한 후 당송을 거쳐 중국에 이르면서 남긴 유구한 역사와 명승지들로 인해 중국에서 손꼽히는 고적지이다. 

이곳에는 3,000여 개의 마야 돌조각을 비롯하여 성지와 비림의 비석조각들이 즐비하다. 거대한 계림 산수의 덩어리가 너무 커 그 규모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또한 이곳은 2억 년 전 바다였던 곳이 지층의 변화에 의하여 생성된 일천만 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석회암들의 군락지이다. 수많은 봉우리 사이를 따라 흐르는 이강은 계림에서 양사까지 83㎞의 절경으로 계림산수의 정수를 보여준다. 산은 푸르고, 물은 맑으며, 동굴은 기이하고, 돌이 아름다운 이곳이 바로 계림산수의 출발이며 중국문화의 발상지다. 다시 보아도 세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임에 틀림이 없다. 

잔잔한 이강을 따라 흐르던 유람선이 조그마한 나루턱에 뱃머리를 멈춘다. 관암(冠岩)동굴의 입구다. 중국의 동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들어서는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완벽하게 보존된 석순과 동굴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한다. 환상적인 동굴의 기기묘묘한 모양들이나 아름다움을 연출하기 위하여 변화무쌍한 조명을 사용한 중국인들의 연출력 또한 뛰어나다. 동굴을 연구하기 위하여 북한에서 이곳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귓전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중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장엄하고 거대한 스케일은 어떤 분야에든지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관암 동굴 안에는 36m높이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천당과 지옥을 연결하는 다리인 듯 지저세계로부터 지상으로 새로운 탄생과 꿈과 희망을 샘솟게 하는 곳이다. 동굴 안에서 배를 타고, 모노레일을 타며,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동굴의 새로운 세계가 전개된다. 

아름다운 중국의 풍경은 아름다운 예술을 탄생시켰고, 대담하고 거대한 스케일은 변화와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아름다운 중국의 풍경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을 이해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구상하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시 탄생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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