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법률,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단어는 사실 역사상 오랜 시간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 왔다. 과거 법과 제도로 패션과 의복을 규제하였던 역사적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후 계급과 신분제가 붕괴되고 개인의 패션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면서 현대사회에서의 법과 제도는 패션의 창작성과 패션 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그 역할을 변모하였다. 본 지면을 빌려 삼국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법률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는지 역사적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패션(fashion)은 ‘특정한 시기 또는 집단에서 유행하는 형식이나 양식’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패션이라 하면 우리는 ‘옷과 장신구’, 즉 ‘복식(服飾)’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과거 복식은 계급과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 중에 가장 가시성이 높고 확실한 도구였다. 현대사회에서 부를 과시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효과적인 도구가 바로 옷과 장신구인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국가 시대에 중앙집권적 국가의 체계를 완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복식 제도의 정비는 필수적이었다. 관직의 등급을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이에 따른 복식을 제정하여 제도로서 이를 규제하였다.

먼저 삼국시대 백제로 가보자. 중국과 우리의 사료 속에서 백제의 복식 제도에 관한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舊唐書』 「東夷傳」에 “其王服大袖紫袍, 靑錦袴, 烏羅冠, 金花爲飾, 素皮帶, 烏革履. 官人盡緋爲衣, 銀花飾冠. 庶人不得衣緋紫(왕은 소매가 큰 자주색 도포와 청색 비단 바지를 입고, 검은색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쓰는데 금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하며, 흰색 가죽 허리띠를 두르고 검은색 가죽신을 신는다. 관인은 모두 진홍색 옷을 입고 은으로 만든 꽃으로 관을 장식한다. 서인은 진홍색이나 자주색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新唐書』 「東夷傳」에 “王服大袖紫袍, 青錦袴, 素皮帶, 烏革履, 烏羅冠飾以金蘤. 群臣絳衣, 飾冠以銀蘤. 禁民衣絳紫(왕은 소매가 큰 자주색 도포와 청색 비단 바지를 입고, 흰색 가죽 허리띠를 차고 검은 가죽신을 신으며, 금꽃으로 장식한 검은색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쓴다. 신하는 붉은색 옷을 입고, 은꽃으로 장식한 관을 쓴다. 일반 백성이 붉은색이나 자주색 옷을 입는 것은 금한다)”는 기록이 있다. 

사진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 관모 장식이다. 위 기록에서 우리는 커다란 소매의 긴 자주색 포와 청색 비단 바지에 흰색 가죽 띠를 하고 검은색 가죽 신을 신고서, 검은 비단으로 만든 관모의 양옆에 아래 사진 속 금으로 만든 꽃 관식을 꽂아 장식한 화려한 백제 왕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무령왕 금제관식 (사진 출처: 공공누리에 따라 ‘국립공주박물관’의 공공저작물 이용)
무령왕 금제관식 (사진 출처: 공공누리에 따라 ‘국립공주박물관’의 공공저작물 이용)

『隋書』 「東夷傳」에도 백제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官有十六品. 長曰, 左平, 次大率, 次恩率, 德率, 次杅率, 次奈率, 次將德, 服紫帶. 次施德, 皂帶. 次固德, 赤帶. 次李德, 靑帶. 次對德以下, 皆黃帶. 次文督, 次武督, 次佐軍, 次振武, 次剋虞, 皆用白帶. 其冠制並同, 唯奈率以上飾以銀花(벼슬에는 16품이 있다. 가장 높은 것이 좌평이고, 그 다음은 대솔, 다음은 은솔과 덕솔, 다음은 우솔, 다음은 나솔, 다음은 장덕이며, 자주색 허리띠를 두른다. 다음은 시덕이고 검은색 허리띠를 두른다. 다음은 고덕이고 붉은색 허리띠를 두른다. 다음은 이덕이고 푸른색 허리띠를 두른다. 다음 대덕 이하는 모두 황색 허리띠를 두른다. 다음은 문독, 다음은 무독, 다음은 좌군, 다음은 진무, 다음은 극우이고 모두 흰색 허리띠를 두른다. 관(冠)제도 동일하고, 오직 나솔 이상만 은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한다)”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周書』 「百濟傳」에도 기록되어 있다. “官有十六品. 左平五人一品, 達率三十人二品, 恩率三品, 德率四品, 扞率五品, 柰率六品. 六品已上, 冠飾銀華. 將德七品紫帶, 施德八品皂帶, 固德九品赤帶, 季德十品靑帶. 對德十一品, 文督十二品, 皆黃帶, 武督十三品, 佐軍十四品⋅振武十五品⋅克虞十六品, 皆白帶”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관복제도에 관하여 『三國史記』 卷24, 「百濟本紀」 2 古爾王 27年에 “二月, 下令六品已上服紫, 以銀花餙冠, 十一品已上服緋, 十六品已上服青(고이왕 27년(260) 2월에 영을 내려 6품 이상은 자주색(紫) 옷을 입고 은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한 관을 쓰며, 11품 이상은 붉은색(緋) 옷을 입고, 16품 이상은 푸른색(靑) 옷을 입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사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www.history.go.kr)
삼국사기 (사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https://www.history.go.kr)

위 기록의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백제는 관직을 좌평에서 극우까지 총 16관등으로 나누고 그 관직에 따라 관복의 색상, 관모의 장식, 허리띠의 색상까지 상세히 구별하여 복식 제도를 제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관(冠)의 경우 왕은 금으로 만든 꽃으로 관을 장식하였고 6품 내솔 이상의 관리는 은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한 관을 썼으며 7품 이하의 관리는 관을 장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관복의 색상은 계급에 따라 자(紫:자주색), 비(緋:붉은색), 청(靑:푸른색)으로 구분하였는데 특히 일반 백성에게는 자주색과 붉은색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자주색과 붉은색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허리띠의 색상은 가장 세분화하여 정하였는데, 자(紫:자주색), 조(皂:검은색), 적(赤:붉은색), 청(靑:푸른색), 황(黃:누런색), 백(白:흰색)의 6가지 색상으로 관직의 상하를 구분하였다.

위와 같이 착용한 옷과 허리띠의 색상, 관모의 장식만 보고도 관직의 높고 낮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시성이 높은 복식(服飾)으로 착용자의 관등(官等)을 구별하는 이러한 방법은 계급제를 공고히 하고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를 마련함에 있어 가장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수단 중 하나였다. 이것이 3세기 고대 국가로 성장한 백제가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기 위하여 관등제를 정비하고 이에 따른 관복제도를 제정하게 된 이유이다.

다음 편에서는 삼국시대 신라의 복식 제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황유선 변호사 Profile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류학과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류학과 박사과정 수료

변호사시험 3회
변리사 
(현)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조선시대 저고리類 명칭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패션 산업에서의 지적재산권과 법적 보호의 문제점, 기업법연구, 한국기업법학회
패션과 법률 강의, 한복비지니스 교육,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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